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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공학회 소식지 2호 권두언” - 소식지 다운로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미래에 대한 우려” 정 항 근 (반도체공학회장)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하여 내수 시장 규모가 작아 내수 의존형 산업은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 반면에 원유나 곡물과 같은 필수 품목은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2017년도 우리나라 통계에 의하면, 총수입액 4,781억불중 원유가 차지하는 금액이 596억불이었으며, 총수출액 5,739억불 중 반도체가 979억불을 넘어섰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벌써 20년이 넘게 국가 경제에 큰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산업 발전으로 인하여 국내 주력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조선, 철강, 자동차, 휴대전화, LCD 디스플레이 등 우리나라 주력 산업들이 이미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액의 약 40%를 차지하는 중국은 이미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서 우리나라를 넘어선지 오래며, 메모리 반도체의 자급(궁극적으로는 수출)을 위하여 엄청난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가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크게 우려되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에 가슴이 답답하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지키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은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일이다. 4차 산업으로 이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반도체 시장의 규모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되며, 스케일링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소재, 장비, 공정 간의 긴밀한 협업이 요구될 것이므로, 우리 학회가 반도체 각 분야 간 융합과 협업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인공 지능용 반도체의 전력 소모를 줄이기 위한 프로세싱-인-메모리 기술과 뉴로모픽 반도체의 개발에 있어서도 학회가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반도체 하드웨어는 무어의 법칙에 의해 주기적으로 혁신이 이루어졌지만, 이제 스케일링의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새로운 돌파구를 위하여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그동안 성공적으로 사용했던 접근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이고, 다른 하나는 모듈러 프로젝트 기반 교육이다. 지난 7월 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주최한 공개 소프트웨어 그랜드 챌린지 행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리차드 스톨만(1983년 GNU 프로젝트), 리누스 토발즈(1991년, 리눅스 운영체제), 에릭 레이먼드(1998년, 오픈 소스 이니시어티브) 등에 의하여 진행되어 온 공개 소프트웨어 운동이, 구글이 안드로이드와 텐서플로우 등의 소프트웨어를 공개하고, 초기에 적대적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까지 동참하면서 능력이 있는 프로그래머가 쉽게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발전한 것을 알게 되었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좋은 사업 아이디어가 있으면, 쉽게 창업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개방형 혁신 플랫폼이 구축되도록 학회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또 다른 하나는 자비에르 닐이 2013년 파리에 설립한 에콜 42이다. 기업 현장에서 필요한 프로그래머를 대학에서 제대로 배출하지 못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하여 개인 재산을 출연하여 설립한 학교로서, 학비도 없고, 교수도 없고, 학위도 주지 않는 학교이다. 수십 개의 모듈로 구성되는 단계별 팀 프로젝트 수행을 통하여 교육생들 스스로 배워가는 훈련 방법을 도입하였는데, 졸업생들이 실력을 인정받아 2016년에 미국 실리콘밸리에도 학교가 설립되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산업의 경쟁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최근 대학생을 보면 산업체 취업을 외면하고, 공무원이나 공기업 취업을 선호하는 추세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우리도 하루 빨리 교육을 혁신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열심히 일하고 능력있는 사람이 성공하는 모델을 구현하지 못하면 반도체 산업도 미래가 어둡다.     2018년 8월 정 항 근

작성일: 2018-09-28 조회:49

학회활동 공유

작성일: 2018-09-28 조회:36

2018 인공지능 반도체 기술 워크샵 (8월 22일 , 서강대학교 정하상관 302호 & 다산관 104호 )

 

작성일: 2018-09-28 조회:22

기술동향 - 과학기술 50년사 중에서 "반도체기술" 분야 (2)

과학기술 50년사 중에서 “반도체기술” 분야 (2) 유 현 규 (반도체공학회 수석부회장)   제 2 절  반도체기술의 개발과정 및 주요성과 도약기 (1984~1997) 64K DRAM 성공에 자신감을 얻게 된 삼성은 1984년 3월 256K DRAM 개발에 착수하여 그해 10월 양산에 성공하였으며 이들 제품의 대규모 생산을 위한 반도체공장이 1983년 및 1985년 5월 각각 기흥에서 준공된다. 후발주자인 현대전자 역시 경기도 이천에 부지를 마련하여 1985년 반도체공장을 완공하고 그해 10월 말 256K DRAM 시험생산을, 이듬해 1986년 5월 일본 히타치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양산에 성공한다. 때마침 선두업체들이 1M DRAM 시장에 집중하면서 발생한 256K DRAM 품귀현상의 수혜를 고스란히 누린 결과, 1988년 현대전자는 반도체부문 1,624억원을 포함한 총 4,628억원의 매출액을 올리며 305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한다. 현대전자의 급성장에는 이처럼 256K DRAM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2012년, p 54). 이 시기에서 관찰되는 추세로 미국과 일본의 선진업체로부터 도입한 제조공정 기술들이 서서히 국내자체 기술들로 교체되어갔다는 사실이다. 자체 설계에 의한 독자제품의 출현은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반도체 투자가 활기를 띄면서 성과도 나오기 시작했지만 DRAM의 극심한 수급불균형과 가격변동성은 대기업에게도 4M DRAM 등 차기제품을 위한 신규투자를 망설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한국을 잠재적 경쟁자로 인식하면서 시작된 선진업체의 대규모 가격덤핑은 이제 막 시작된 DRAM 개발의 열기에 찬물을 부은 격이었다. 이 같은 후발주자의 불리한 시장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함을 간파한 정부는 범부처적인 지원정책을 강구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1985년 10월 삼성반도체통신, 금성반도체, 현대전자, 아남산업, 대우통신 및 ETRI 가 모여 공동연구를 위한 합의를 이끌어 냈다. 이듬해인 1986년에는 실무협의 및 7월의 관계부처합의 (경제기획원, 과학기술처, 체신부, 상공부)를 통한 실천방안이 수립되면서 4M DRAM 개발은 “초고집적반도체기술공동개발”로 1986년 8월 22일 대통령 재가를 받아 확정된다. 그때까지 국가 R&D 과제에 대통령이 직접 서명한 전례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개발자들은 이 사업을 대통령 프로젝트라 부르곤 했다. 0.8μm 선폭의 4M DRAM 반도체 생산기술 및 관련 기본기술개발을 목표로 사업기간은 1986년 10월부터 1989년 3월까지 30개월이며 연구비 총액은 879억, 투입인력은 670명이었다. 1986년 당시 과기처 연구개발비 총액이 517억원이었음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초대형 국가 R&D 사업이었던 것이다. ETRI를 총괄연구기관으로 반도체연구조합 회원사인 금성, 삼성, 현대 등 반도체 3사와 서울대 부설 반도체공동연구소가 참여한다. ETRI는 4M DRAM에 필요한 모든 상세기술을 도출한 뒤, 지표화된 기술개발 체계를 구축하였으며 전 과정을 철저하게 문서화 할 것을 요구했다. 이를 근거로 각 세부결과들은 계량점수로 평가되었으며 점수부여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ETRI 연구원들은 참여 3사의 반도체 제조시설을 수시로 드나들며 개발과정의 중간 과정까지 꼼꼼하게 확인 해 나갔다. 결과의 해석을 놓고 간혹 시비가 붙으며 얼굴을 붉힐 때도 있었지만 예민할 수밖에 없었던 경쟁의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동료의식으로 변해갔다. 정부의 예산이 투입 된 만큼 개발정보는 공유되어야 했고 철저한 경쟁을 통해 성과 역시 확실하게 확보해야 했기 때문에 사업을 책임 진 ETRI의 이 같은 압박 전략은 불가피 했다. 4M DRAM은 예정보다 한 달 빠른 1989년 2월 시제품개발에 성공한 데 이어 3월에는 수율 20%의 양산모델을 확보하게 된다. 이 결과는 선진업체에 불과 1년도 되지 않은 거리로 따라잡은 것이었으며, 이제 추격의 발판을 확실히 다졌다는 자신감을 우리 모두에게 확실하게 심어 준 신호탄이기도 했다 (과학기술부, 2006, pp.33~34). 4M DRAM 개발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기업과 정부는 곧 바로 16M/64M DRAM 개발 사업도 추진한다. 추격을 너머 아예 선진업체들 뛰어 넘자는 것이 이 사업의 기본 골자였다. 정부 (과기처, 상공부, 체신부)에서 600억원을, 참여기업이 1,300억원을 조달하는 등 총 1,900억원의 예산으로 1단계 16M DRAM은 1989년 4월부터 1991년 3월까지 2년 내에 개발하여 동등수준으로 따라잡고 이어서 2단계인 1989년 4월부터 1993년 3월까지 64M DRAM을 개발해서 추월하자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16/64M DRAM 개발의 범위도 확대되었다. 4M DRAM과 동일하게 ETRI를 총괄연구기관으로 반도체 3사가 참여하되 이번에는 반도체 장비관련 업체도 동참한다. 제작기술개발에도 벅찼던 4M DRAM 개발과는 달리 장비나 재료도 함께 개발함으로써 DRAM 반도체산업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도 함께 키워나가자는 취지에서였다. 추진방식은 4M DRAM의 경우와 유사한 “협력적 경쟁개발”이었으나, 지나친 경쟁의 부작용을 완화한다는 측면에서 다소 유연한 실행체계로 진행했다. 91년 3월 목표한 대로 16M DRAM 개발을 완료함에 따라 일본과 대등한 수준에 도달했고 1992년 8월 참여업체였던 삼성전자가 드디어 세계 최초로 64M DRAM 개발에 성공한다. 현대도 그해 9월 64M DRAM 시제품을 개발하여 그 뒤를 바짝 뒤쫓아갔다. 이후로도 1993년 11월부터 256M DRAM 공동개발과 이후 세대의 반도체기술연구개발을 위한 “차세대반도체 기반기술개발사업”이 4년간 총 1,946억원의 예산으로 진행된다. 반도체연구조합은 조합 내에 ‘차세대반도체연구개발사업단“을 설치하여 본 사업을 총괄하게 되었으며, 약 6년 동안 메모리 국책사업을 이끌고 왔던 ETRI는 이제 차세대반도체 기반연구에 전념하게 된다. 다부처 (과학기술부,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의 대규모 반도체 국책 R&D 사업의 주체가 국책연구기관에서 민간으로 전환된 것이다. 사업이 진행되던 1994년 8월 삼성은 256M DRAM 시제품 개발에 일찌감치 성공함으로써 256M DRAM 공동개발 과제는 조기 종료되었고, 이에 따라 목표상향 조정 등을 일부 보완된 형태로 과제는 1996년 10월까지 이어나간다. DRAM  국책사업이 연이어 진행되던 1992년, 삼성전자가 마침내 도시바를 제치고 DRAM 분야에서 세계 1위업체로 도약한다. 64M DRAM의 세계 최초 개발도 놀라운 성과였지만,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일본 DRAM 업체들을 모두 물리치고 세계 1위 기업이 된 것은 삼성전자는 물론 우리 모두의 쾌거였다. 미일반도체의 치열했던 분쟁의 조정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도 반도체업계를 지원하는 민간기구가 필요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86년 5월 24일 “한국반도체연구조합”이 출범한다. 한편 반도체시설에 대한 대규모 시설투자와 병행해서 1988년 6월 22일 국내 반도체장비산업 육성을 위해 장비제조업체 및 판매 대리점이 주축이 되어 “한국반도체장비협회”가 설립된다. 그 후 1991년 “한국반도체산업협회”기 출범하면서 기존의 한국반도체연구조합과 한국반도체장비협회는 새로 설립된 협회로 통합된다. DRAM 반도체 생산을 위한 대규모 투자와 대형 국책사업이 진행되던 1987년 2월에 주문형반도체 (ASIC: Application Specific IC) 설계전문회사인 한국실리콘이 설립된다. 같은 해 6월에는 LSI 로직 코리아를 설립되었고 뒤를 이어 인텔과 모토로라 등 미국 및 일본의 설계전문업체들이 합작회사 형태로 진출하기 시작한다. 이듬해인 1990년에는 “서두로직”이 설립된다. 업계에서는 이 회사가 한국형 팹리스 (Fabless, 설계전문회사)의 효시로 보고 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2012년, p 145). 반도체조립회사 Comy가 설립된 지 20여년 만에야 ASIC 전문회사가 설립되기 시작 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ASIC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아남반도체설계, 금성반도체, 삼성반도체통신도 ASIC 기술개발에 착수한다. ETRI는 1985년 9월부터 한국통신으로부터 333억원의 출연금을 받아 통신시스템용 주문형반도체 기술개발에 착수하였고 7년간의 사업수행을 통해, TDX-1, TDX-10, ISDN, 광 CATV 시스템용 ASIC들을 개발하여 산업체로 이식시켰다. 본 사업 내용에는 구미의 반도체시설을 매각하면서 확보한 연구용 반도체 신규시설로 0.8μm CMOS 표준공정 (4M DRAM 급)을 개발하는 것도 포함되었다. 자체기술로 개발한 CMOS 표준공정은 1993년 ETRI 부설기관으로 설립한 ‘반도체칩디자인센터“ 통해 기업들이 요청하는 ASIC들을 설계 및 제작 지원을 하는 등, 우리나라 ASIC 서비스 전반에 대한 기반확충을 시작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1997, pp.375~376). 현대전자는 5억원 상당의 기자재를 제공했으며 상공부는 센터의 운영자금을 지원했다. 한편, 1988년 10월에는 서울대학교 부설 반도체공동연구소가 반도체 인재 양성과 첨단기술연구를 목적으로 개소 된다. 지금은 KAIST에 건립된 나노종합기술원 등 보다 최신 시설의 반도체 제작지원기관이 등장했지만, 80년대 후반에 이 같은 전문시설이 설립된 것은 세계적으로도 흔하지 않은 환경이었다. 본 연구소는 85년 개소한 이래 2015년까지 반도체 공정 및 소자분야의 석사 1,060명과 박사 501명을 배출하였으며 국제논문 1,500여 편을 게재하는 등, 반도체 공정 및 소자분야의 전문 인력양성에 구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서울대반도체공동연구소, 2016).   성장기 (1998~2013) DRAM에서 승기를 잡은 우리나라는 그 후 진군을 거듭하면서 마침내 1998년 DRAM 부분에서 일본을 젖히고 제1 위의 생산국이 된다. 곧 이어서 2002년에는 메모리 전체 시장에서도 1위로 등극한다. 이 같은 성장에는 삼성전자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DRAM이 기가급으로 전환되면서 삼성전자의 독주는 더욱 가속된다. 메모리 집적도의 역사를 계속 갈아치우는 주역이 된 것이다. 플래시메모리의 약진도 메모리 1등에 큰 역할을 했다. 한편 IMF 여파로 인해 LG반도체와 합병한 현대전자는 2001년 사명을 하이닉스로 변경하여 의욕적으로 출발하지만 반도체가격 대폭락의 시기와 맞물리면서 워크아웃으로 내몰린다. 외국기업에 매각될 위기에 놓이자 반도체 전공교수들을 중심으로 하이닉스 살리기에 나선다. 하이닉스 직원들의 그야말로 피땀 어린 자구노력과 반도체 경기의 회복에 힘입어 2005년 7월 재기에 성공하였으며 2015년부터 지금까지 메모리 세계 2위 기업으로 우뚝 서 있다. 시장논리에 휘둘려 매각 됐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지금도 아찔하다. 메모리의 성장과 더불어 정부는 서둘러 시스템반도체 육성전략을 실행에 옮긴다. 시스템반도체는 메모리 및 특수반도체 소자를 제외한 모든 비메모리 반도체를 통칭한다. 산자부는 과기부와 정통부를 협조부처로 1995년 12월부터 2000년 5월까지 4년여에 걸쳐 “HDTV용 주문형반도체개발사업”을 진행한다. 1985년 한국통신 출연금으로 ETRI가 주문형반도체사업을 착수한 바 있으나 국책 R&D 사업으로는 처음으로 착수한 비메모리분야의 대형사업이었다. 산자부 산하 전문연구기관인 전자부품연구원 (KETI: Korea Electronics Technology Institute)을 총괄 주관기관으로 총사업비 916억원 (출연금 458억원, 민간부담금 458억원)이 투입되었다 (한국전자부품연구원, 2016). 참여기관으로는 KETI를 비롯하여 국내 종합전자 4개사와  KAIST 등 14개 대학이 참여하였다. 사업이 진행되던 97년 10월 HDTV Decoder용 Video/Display ASIC을 개발하고 이듬해 7월 일본 샤프에 칩을 수출 하는 등, HDTV용 핵심기술인 디지털신호처리 자체설계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다. 국내 TV 사업이 조립생산형태에서 핵심부품을 자체개발 하는 기술 집약형 산업을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산업자원부 2000). 시스템반도체개발을 위한 본격적인 국책사업 (시스템집적반도체기반기술개발사업, 일명 ‘시스템반도체 2010’)도 1998년 12월부터 시작된다. 1단계 기반기술강화, 2단계 선도기술개발, 3단계 응용산업 창출의 목표로 2011년 6월까지 진행되었으며 총 수행 기간 13년의 최장기 대형 R&D 사업이었다. 과기부 (1단계) 및 산업부 (1, 2단계, 3단계:지경부)를 주관부서로 민간기구인 반도체연구조합이 사업을 총괄했다. 총 334기관 195개 과제에 4,094명4,094명의 연구인력이 참여하였으며 정부출연 2,476억원, 민간출연 2,319억원 등 총 4,795억원이 투입되었다. 사업명으로 시스템반도체를 내세웠지만, 사업의 범위가 반도체 공정, 장비, 재료, 신물질까지 포괄하는 등, 사실상 비메모리반도체 전반을 아우러는 사업이었다. 사업기간 동안 멀티미디어 칩 (AP), 디스플레이구동 칩 (LDI), 카메라이미지센서 칩 (CIS) 등이 세계적 품목으로 성장하는 토대가 되었고 실리콘웍스, TLI, 실리콘마이터스, 실리콘화일, 아이앤씨 등 매출액 500억원 이상의 스타 팹리스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본 사업이 목표했던 바, 메모리 중심의 반도체산업구조에서 탈피하기 위한 시스템반도체산업의 기초적인 토양을 갖추게 된 것이다 (지식경제부, 2011). 이어진 시스템반도체상용화기술개발사업 (일명 시스템반도체 2015)은 시장규모가 큰 디지털가전, 모바일 및 자동차분야 등으로 선택해서 집중 지원함으로써 팹리스의 국제경쟁력을 키우고 이를 통한 시스템반도체 세계시장점유율을 확대해보자는 것이 전략의 핵심이었다. 지경부를 주관부처로 2011년 12월 착수한 본 사업은 2016년 9월 종료(총 58개월) 하였으며 정부 출연 1,001억원, 민간부담금 562억원 등 총 1,563억원으로 진행했다. 참여기업들의 매출액이 2015년 기준으로 1,000억원을 벌써 상회하였을 뿐 아니라 IP의 기술이전 약 140억원을 비롯해서 IP 특허 300건을 출원하였다 (반도체산업협회 2016 현황자료). 이밖에도 지경부는 2009년 Star SoC 사업과 2011년 착수한 IT 복합기기용 시스템반도체사업도 병행하였다. 한편 ETRI는 2008년까지 정보통신부 주관 사업을 수행했던 바, 이동통신 및 네트워크분야 등 정보통신 시스템반도체 (IT-SoC)를 중점적으로 개발하였다. 자체개발한 CDMA용 모뎀과 Baseband Analog 칩 기술을 반도체 3사로 기술이전 한 것을 비롯하여 1.25G, 2.5G, 10Gbps급 광소자반도체를 차례로 개발하여 통신네트워크 인프라에 성공적으로 적용시켰다. 1999년과 2001년에는 CMOS기술로 RF부분을 집적하여 통화시험에 최초로 성공함으로써 우리나라 RF/Analog 산업분야를 활성화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인체통신방식을 국제표준으로 등록하고 관련 시스템반도체기술을 개발하였다. 2004년부터 정통부는 IT 839전략을 의욕적으로 추진한다. 새로운 서비스와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관련 IT-SoC를 개발한다면, 그 반도체는 서비스의 보급과 함께 자연스럽게 선도적 지위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점이 IT839가 담았던 시스템반도체개발의 핵심 우위 전략이었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로 DMB 칩셋 개발 사례를 들 수 있다. DMB는 ETRI가 국제표준 승인을 받은 세계최초의 모바일 방송 서비스기술이며 이에 따라 개발된 DMB 칩기술 역시 최초가 된 것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2012, pp.239~240). 서비스보급에 따라 DMB 칩 기술을 전수받은 국내 팹리스들은 새롭게 열린 시장에서 일정기간 호황을 누렸다. 이 모델은 분명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10년이 지난 오늘의 지표들은 끊임없이 등장하는 대체서비스에 대응해야 하는 것과 새로운 독자 시스템을 전 세계로 보급, 확산하고 지속케 할 수 있는 우리의 역량 즉 국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2013년 현재 시스템반도체 매출액은 172억불로 전체 세계시장 2526억불의 5.8%를 차지한다. 정부의 과감한 R&D 투자가 다각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기대보다 높지 않은 게 현실이다. 반도체 최대의 격전장인 시스템반도체의 시장장벽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이는 어쩌면 기술뿐 아니라 시스템반도체를 둘러싼 생태계 경쟁력의 장벽이 아닌지 모르겠다. 팹리스로 대표되는 시스템반도체 설계분야는 정부가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집중 투자를 해 왔다. 그에 힘입어 2000년~2011년사이에 국내 팹리스로 상장된 회사는 25개사에 이른다. 이들 20여 업체는 지난 2008년 총 매출액 1조원을 돌파함으로써 시스템반도체 도약의 여건이 마련되었다는 부푼 꿈을 가져보기도 했다 (한화증권, 2011). 그러나 2011년을 정점으로 팹리스의 성장세는 정체되고 있다. 시스템반도체의 제작전문 산업인 파운드리 (Foundry)의 주요 업체로는 동부하이텍과 매그나칩 등이 있다. 특히 동부하이텍의 경우 1997년 설립한 이래 중화권 업체들의 강세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현재는 아날로그반도체 분야로 특화함으로써 2014년부터 흑자로 전환했으며 지난해 비로서 1,3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기 시작했다. 대만은 파운드리와 팹리스간의 시너지가 가장 잘 형성된 나라다. 대만의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은 이 같은 상생관계에 힘입은 바가 크다. 중국도 여기에 끼어들면서 범중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최근 중소 팹리스업체에 대한 파운드리 서비스 문호를 개방하였으며 SK하이닉스도 일부 아날로그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우리 실정에 맞는 팹리스-파운드리 상생모델을 만들어 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시스템반도체 기반확충의 일환으로 설계 전문인력 양성기관인 IDEC의 설립과 ETRI ASIC 지원센터 설립은 특기 할만하다. ETRI 지원센터는 1997년 서울에서 개소 한 이래 IT-SoC 지원센터를 거쳐 현재는 판교로 자리를 옮겨 수도권 SW-SoC R&BD를 연계한 신생기업 육성 및 지원의 전초기지로 그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2015년 현재까지 1,769억이 투입되었으며 연 평균 131개사의 CAD 툴 공동 활용지원, 연 평균 80건의 설계자산 (IP) 사용 및 지원을 하였고 창업보육 8개사를 포함해서 25개사가 상장되는 등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SW-SoC융합R&BD 센터, 2016). IDEC은 상업부의 지원하에 대학의 설계인력 양성의 취지로 KAIST 부설 연구센터로 1996년 설립되었다. 2015년 현재 국내 69개 대학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시스템반도체관련 교육기관 전부가 참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1년 이래 2015년까지 파악된 전문설계인력배출 현황을 보면 석사 9,260명, 박사 1,596명 등 총 10,856명을 배출하는 등 우리나라 시스템반도체 설계인력의 산실이었다. IDEC의 칩 설계 프로그램을 통한 논문은 국외저널 3,296편을 포함해서 약 15,000편을 상회한다. 특히 반도체기술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ISSCC 등 국제 유명학회에도 해마다 20여편 이상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일부 대학의 반도체설계분야 수준이 세계적임을 시사한다 (IDEC, 2016). (다음 호에 계속)

작성일: 2018-09-28 조회:28

“반도체공학회 소식지를 펴내며” - 소식지 다운로드

“반도체공학회 소식지를 펴내며” 정 항 근 (반도체공학회장) 안녕하셨습니까? 올해에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 와서 나무들은 겨우내 준비해 온 꽃망울을 줄줄이 터트리고 있습니다. 작년 12월 우리 반도체공학회가 설립허가를 받은 이래 하루빨리 학회가 회원 여러분을 위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학회 임원진을 중심으로 노력을 해 오고 있습니다만 의도했던 것보다 조금 시간이 더 걸려 이제야 기본적인 모습을 갖추어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동안 학회에서는 학회의 연간 운영 계획 수립을 위한 임원 워크샵 개최, 학회 사무실용 전용 공간 확보 및 직원 채용, 학회 홈페이지 구축, 주무관청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문 및 차관 면담, 지능형반도체워크샵 개최 준비, 과총의 학술대회 지원사업 신청 준비 등이 진행되어 오고 있었습니다만 회원 여러분께 소상히 알려드리지 못하였습니다. 학회에서는 회원 간 원활한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우선 학회 소식과 회원 동정 등 유익한 정보를 회원님들과 공유하기 위하여 뉴스레터를 창간하고자 합니다. 계간으로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발간 회수와 지면을 늘려 회원님께 유익한 뉴스레터로 발전시켜 나아갈 계획입니다. 알찬 뉴스레터로 키워가기 위하여 유익한 글을 기고해 주시고, 회원 동정을 알려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8년 4월 반도체공학회장 정항근

작성일: 2018-04-05 조회:56

반도체공학회 임원진 소개

회장 정항근 전북대학교 hgjeong@jbnu.ac.kr 부회장 유현규 (기획/사업) ETRI hkyu@etri.re.kr 최중호 (학술/회원) 서울시립대 jchoi@uos.ac.kr 범진욱 (총무/재무) 서강대학교 burm@sogang.ac.kr 총무이사 김종선 홍익대학교 Js.kim@hongik.ac.kr 사업이사 이규복 전자부품연구원 leekb@keti.re.kr 재무이사 김경기 대구대학교 kkkim@daegu.ac.kr 학술이사 박종선 고려대학교 jongsun@korea.ac.kr 기획이사 강석형 POSTECH shkang@postech.ac.kr 감사 이윤식 UNIST leeys@unist.ac.kr 감사 신현철 광운대학교 hshin@kw.ac.kr 고문 김영환 POSTECH youngk@postech.ac.kr 고문 김희석 청주대학교 Khs8391@cju.ac.kr 고문 선우명훈 아주대학교 sunwoo@ajou.ac.kr

작성일: 2018-04-05 조회:59

학회 활동 공유

반도체공학회 정기 총회 일시: 2017년 12월 8일 , 장소: 홍익대학교 홍문관 2018년도 사업계획(안) 및 예산(안)심의 수석부회장 선출 주무관청 추가 심의 반도체공학회 2018년도 이사회 1차: 2018년 1월 5일, 전북대학교 정관 및 내부 규정 개정 기부금 단체 지정 신청 건 2차: 2018년 1월 26일, 비즈스퀘어 유관기관 방문 추진, 일정 협의 학회사무실 운영반안 회의 3차: 2018년 2월 22일, 반도체공학회 사무실 워크샵 추진 계획 논의 (운영위원 구성) 우수 연구자 회원 확보 방안 논의 4차: 2018년 3월 16일, 반도체공학회 사무실 지능형반도체 워크샵 관련회의 학회 사무국 직원 채용관련 사항 논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문 일시: 2018년 2월 23일 차관 면담 반도체공학회 동계 심포지움 일시: 2018년 1월 5일 – 1월 6일 장소: 전북대학교 공과대학 8호관 주제: 4차산업 혁명을 위한 반도체 운영위원장: 최중호 교수 (서울시립대) 반도체공학회 개소식 일시: 2018년 2월 22일 위치: 서울시 강남구 봉은사로 420, 학산빌딩  

작성일: 2018-04-05 조회:60

2018 지능형반도체 기술 워크샵 (4월 26일 , 호텔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 호텔 2층 샴페인홀)

인공지능(AI) 기술은 우리의 미래 사회와 생활 전반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됩니다. 지능형반도체는 이 같은 변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바, 세계 각국의 연구개발 경쟁 또한 더욱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추세에 맞추어 반도체공학회에서는 지능형반도체 관련 산-학-연 최고의 전문가를 모셔서 현재 진행 중인 연구내용과 정부의 주요 기술정책을 소개하는 워크샵을 개최합니다. 실질적인 기술과 유익한 정책방향이 제공되는 정보교류의 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지능형반도체 기술 워크샵 운영 위원회 기술 워크샵 운영위원장: 유현규 (ETRI 책임연구원) 기술 워크샵 운영위원 : 최중호 (서울시립대 교수)                                 이규복 (전자부품연구원 본부장) 김경기 (대구대학교 교수)                                 박종선 (고려대 교수) 강석주 (서강대 교수)                                       강석형 (POSTECH 교수) 강성원 (ETRI 지능형반도체연구본부장)               김동순 (KETI 센터장) 정보선 (넥스트칩 수석연구원)                           김영민 (광운대 교수)  

작성일: 2018-04-05 조회:75

기술동향 - 과학기술 50년사 중에서 “반도체기술” 분야 (1)

과학기술 50년사 중에서 “반도체기술” 분야 (1) 유 현 규 (반도체공학회 수석부회장)   제 1 절  반도체 산업 현황 2014년 현재 우리나라 반도체 생산규모는 약 584억 달러로서 세계시장 3,360억불의 약 16.5%를 차지하였으며 2013년을 기점으로 일본을 추월한 이래 2016년 까지 반도체 생산국 세계 2위를 유지하고 있다 (반도체산업협회 2016 현황자료). 한편 반도체 수출은 지난 1995년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14%를 차지 한 이래 지난 20년간 꾸준히 10%대의 비중을 차지하면서 수출 1위의 산업으로 자리매김하였고 GDP 비중 역시 5~6% 대를 유지하는 등 우리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을 계속 증가해 왔다. 반도체 소자, 장비, 설계 등 약 900여개의 업체에 종사하는 종사자는 2014년 현재 약 13만 8천명 (간접인력을 포함 할 경우 약 40만명)으로 파악 되고 있으며 각 분야에 필요한 신규 인력 약 7,000명의 공급과 실무교육 강화를 위해 대학 및 세부 분야별 전문센터 등이 운영되고 있다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2015). 이 같은 반도체 강국으로서의 외형은 메모리에서의 절대적 우위와 스마트폰, TV 등 세트업체들의 선전에 힘입은 바 크지만 세계반도체 시장의 60%이상을 차지하는 시스템반도체에서는 그동안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3~5%내외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등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반도체기술의 도입은 그 개척자인 미국은 물론, 우리를 둘러싼 일본, 중국, 대만 등 주요 경쟁국들에 비교하여 약 10~20년 늦은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 가장 뒤쳐진 후발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50년 동안 이 같은 외형의 급성장이 가능했던 요인은 국가의 확고한 기술개발 정책수립과 지속적인 실행, 산업체의 탁월한 선택과 과감한 투자, 꾸준한 R&D에 따른 직-간접적인 성과 및 저변확대, 우수 인력의 유입 및 육성, 엔지니어들의 투지 가득한 사명감과 근로자의 근면 성실함, 국제 환경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응 등의 요인들이 결합되면서 도출된 결과로 분석되고 있다. 1947년 미국 벨 랩이 트랜지스터 소자를 발명한 이래 미국을 시작으로 일본, 그리고 한국 등이 뒤따르면서 70년의 반도체산업의 역사를 써왔다. 이제 우리 앞에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두 가지 큰 변수가 등장했다. 무어의 법칙으로 지속되어왔던 집적화 추세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기술적 변수와 함께 반도체 수요와 공급의 가장 큰 시장인 중국의 등장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반도체소자가 처음으로 발표된 시점이 1966년이었으니까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0년 전이다. 세계 2위의 반도체강국으로 성장한지 채 5년도 되기 전에 우리는 중대한 고비를 맞게 되었다. 50년의 발전경과를 되돌아보면서 미래를 전망하는 일은 그러므로 시의적절하고 의미 있는 과정이라 하겠다.   제 2 절  반도체기술의 개발과정 및 주요성과 태동기 (1965~1973) 반도체기술의 발전으로 반도체부품의 수요가 폭 넓게 확대되어 감에 따라 미국과 일본은 반도체 단순조립 비용을 낮추기 위한 방편으로 60년대 중반부터 한국을 주목했다. 양질의 값싼 노동력도 매력이었지만 무엇보다 조세감면의 특혜를 주는 “외자유치법”이 1966년 8월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1965년 12월 합작투자형태로 미국의 코미 (Komy)가 설립한 “고미전자산업(주)를 필두로, 1966년 4월 Fairchild Semikor, 같은 해 7월 시그네틱스 코리아, 12월 한국마이크로전자 ㈜에 이어 1967년에는 모토로라, IBM 코리아, 컨트롤데이터코리아, 셋방전자 등 73년까지 미국 11개사, 일본 7개 업체가 설립되어 반도체 조립생산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조립생산 (패키징) 시장의 성장과 외국투자기업의 러시현상을 주목하던 아남산업은 국내자본으로는 처음으로 앰코일렉트로닉스와의 협력을 통해 1969년 반도체 패키징 사업을 시작한다. 급증하던 시장수요로 인해 1970년 첫 샘플을 생산 한 이래 10년이 되던 1979년 9월 아남은 수출실적 1억8,283만불이라는 놀라운 실적을 달성한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2012년, p.18). 한편 반도체의 가장 큰 수요처인 전자산업은 1964년 상공부가 선정한 13개 중점 육성 수출산업에 포함되면서 반도체산업보다 한발 앞서 국가적 관심과 정책적인 지원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한다. 금성사는 1959년 11월 진공관으로 만든 국산라디오 A-501를 처음 생산한데 이어 이듬해 트랜지스터형 라디오 TP-601을 처음으로 출시하였으며 1966년 8월 흑백 TV VD-191을 출하하는 등 국내 전자산업의 태동기를 주도해 나갔다 (서현진, 2001, p.75). 삼성전자는 이보다 약 10년 늦은 1969년과 1970년에 일본과 2개의 투자 합작형태로 전자산업에 합류한다. 1969년 전자공업진흥법이 제정된 후 74년까지 아남산업, 한국도시바 (KEC 전신), 동남전기, 삼양전기, 대한전선, 오리온 전기, 대우전자, 흥창 등 연 평균 30여개의 회사가 전자산업에 신규 투자하면서 전자산업 중흥의 본격적인 기반을 다져나가게 된다. 비록 대부분이 비 산업용 전자제품에 국한되기는 했으나, 라디오와 TV 뿐 아니라 세탁기, 냉장고, 에어콘, 전화기 등 점차 전자제품군이 확대되어 갔다. 정부의 국산품 사용에 대한 적극적인 장려와 지원정책에 힘입어 이들 제품의 생산규모가 크게 증가하고 있었지만, 부품을 전량 수입하여 제작하는 형태로는 전자제품의 경쟁력 확보에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핵심부품인 반도체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처럼 반도체의 중요성과 기술저변이 확대되어 가는 가운데, 원자력연구소 전자공학 연구실팀은 “프래너 다이오드와 트랜지스터의 試作” [제1보]와 [제2보]를 전자공학회지 1966년 4월과 12월호에 연이어 발표한다 (정만영 외, 1966) 이들이 개발한 반도체소자는 1인치 실리콘 웨이퍼를 사용하여 제작한 바이폴라 트랜지스터로서, 최소선폭 44μm에 소자이득은 약 30~70정도 이었다. 제 2보의 서론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눈에 띈다. “ ~ 전자공업계의 또 하나의 혁명을 불러 올 것이 기대된다. 한국도 이런 경향을 외면하고 유구한 5천년의 역사만 뒤질 수 없다. 우리들도 이런 혁명에 참여하고 전자공업의 부흥을 꾀해 보려는 심정이 간절하다 ~“. 이는 학술논문이 아니라 마치 전장을 나서는 병사의 각오처럼 들리지 않는가? 흥미로운 점은 이로부터 불과 2년 후인 1968년 5월에 대한전자공학회와 한국전자공업협동조합은 공동으로 “집적회로 (IC: Integrated Circuit) 세미나”를 그것도 6일간 집중적으로 개최하였다는 점이다. 공개강좌의 내용도 IC의 기본, 설계, 제작, 응용, 박막, 및 신기술 등 IC의 모든 소요기술을 총망라한 것 이었다 (대한전자공학회, 2016, p.630). 라디오와 일부 전자부품을 조립 생산하던 60년대 초 중반의 초보적인 전자산업 단계와 반도체라는 용어에 이제 겨우 익숙해져가는 수준에 불과했던 당시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개별소자를 너머 반도체 IC의 중요성과 가치를 간파한 초창기 개발자들의 선견과 열의가 그저 놀랍기만 하다. 1966년 2월 KIST가 설립되면서 그동안 산발적으로 진행되어 오던 국가의 반도체 기초연구는 KIST 전자장치연구실로 모여진다. 특수 다이오드, 고주파 트랜지스터, MOSFET, MOS-IC, Linear IC, 및 Digital IC 등의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1973년에는 미국 GE사에서 사용하던 소규모 반도체 생산장비를 도입하여 TV용 반도체개발에 착수한다. 이듬해 1974년에는 페어차일드의 반도체장비를 추가로 기증받으면서 이 연구실은 반도체개발센터로 그 규모가 더욱 확대된다. 그즈음 KIST가 반도체 생산시설을 운영하는 것이 타당한 가에 대한 주장과 함께 별도의 독립된 기관으로 발전시키는 방안이 정부의 관련 정책과 맞물려 검토되었으며 이에 따라 KIST 반도체연구센터는 1976년 구미에 설립되는 한국전자기술연구소 (KIET: Korea Institute of Electronics Technology)의 반도체부문으로 흡수되어 보다 발전적 모습으로 거듭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2007, pp.48~49). 기반 구축기 (1974~1983) 1974년 10월 7일, 부천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반도체 웨이퍼 가공공장 준공식이 열렸다. 국내 KEMCO와 미국현지법인 ICII 각각이 50만불씩 총 100만불의 자본금으로 1974년 1월 26일 설립된 한국반도체(주)는 정부인가를 받은 지 9개월도 채 못 되어 첨단 웨이퍼가공 생산시설을 완공한 것이다. 반도체조립과 웨이퍼 가공의 차이를 잘 파악하지 못했던 당시 상황에서 특수한 시설공사와 생소한 공정장비도입 과정 하나하나에 많은 고충이 있었지만 이처럼 빠른 시간에 저렴한 비용으로 완공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회사가 목표로 했던 제품이 당시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했던 전자시계 칩이었는데 이를 첨단 공정인 메탈 게이트 CMOS로 3인치 웨이퍼를 사용하여 생산한다는 점이다. 대기업마저 본격적인 진입을 망설이고 있던 판에 이 같은 재미 반도체전문가 개인의 열정과 당찬 생산계획은 한편으로 무모하게 보여 지기도 했지만 당시 우리나라 반도체 관련 업계의 커다란 충격을 준 것은 부인 할 수가 없다. 한국반도체는 1975년 9월 LED 전자손목시계용 반도체인 KS-5001개발에 성공하여 양산개시 3개월 만에 흑자로 전환한다. 세계에서 4번째로 전자시계용 칩 생산국이 된 것이다. 한해 뒤인 1976년에는 약 418만 달러의 수출실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1973년 불어온 오일쇼크에 따른 급격한 경기침체, 상품수요의 급변, 추가투자의 실패 등 몇 차례의 굴곡을 거치면서 한국반도체는 극심한 경영상의 어려움에 직면한다. 전자산업 핵심부품의 국산화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삼성은 74년 50%, 77년 잔여 지분 50%까지 모두 인수한 뒤 1978년 3월 삼성반도체로 상호를 변경한다. 오늘날의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문의 뿌리가 된 것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2012년) 외자투자의 급작스런 위축, 국내임금의 상승과 기업들의 혼란 등을 경험하면서 시장환경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독자적인 기술기반확보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었다. 1977년 제 4차 경제개발계획 5개년 계획 수립에 앞서 전자산업과 수출을 총괄하던 상공부는 ‘전자기술연구소’ 발족을 착실하게 준비해 오고 있었는데, 이 계획은 1976년 9월 열린 경제간담회에서 처음으로 공식화하였으며 곧 이어 1976년 12월 30일 KIET가 상공부 산하 연구기관으로 공식 출범한다. 발족당시 연구소 반도체부문의 인력은 KIST 반도체기술개발 센터의 연구진이 주축을 이루었다. 연구소에 부여된 임무는 연구개발에 그치지 않고, 제품의 제조와 시험생산을 통한 전자산업의 지원까지 포괄하는 것이었다. KIET 설립이 공식화된 직후인 1976년 11월 정부는 IBRD 차관을 신청하였으며 그 후의 두 차례 타당성 조사를 거쳐 1979년 3월 2,900만불의 차관도입 협정이 체결된다. 1981년 10월 가동한 KIET 반도체시설은 당시로서는 가장 앞선 첨단 웨이퍼가공 시설이었다. 시설공사와 병행하여 KIET가 생산 할 반도체 품목에 대한 검토도 진행되었다. 때 마침 미국 VTI 사는 게임 칩에 필요한 32K ROM의 일괄공정기술을 구축한 신생회사로서, 그들 칩을 추가 양산할 공장을 물색하던 중이었으며 KIET로서도 VTI가 제안한 ROM이 가장 현실성 있는 제품으로 판단되었다. 이에 따라 KIET는 1982년 초 VTI 사의 기술을 도입하여 ROM 설계, 개별공정, 양산기술, 및 시험 등 포괄적인 개발에 착수하였다. 같은 해 10월 25일, KIET는 국내 최초로 32K ROM 개발에 성공한다. 그러나 연구진들이 축배를 들기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VTI 사에 칩을 공급하기 위해 필요한 보장수율 36%의 확보였다. 국내 처음으로 시도하는 첨단 반도체 칩의 수율 향상을 위해 KIET 연구진 모두는 밤낮없이 매 달렸다. 1983년 1월 수율이 드디어 10%대를 넘으면서 그해 4월 마침내 국제수준급인 평균 44%, 최고 60%까지 끌어 올리는데 성공한다. 개발기술 일부는 VTI 생산라인에 역으로 적용되는 사례도 발생하는 등, 짧은 기간에 이룩한 이 같은 성과는 고객인 VTI 사를 깜짝 놀라게 했다. 32K ROM 양산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KIET 연구진은 같은 해 5월 4.5μm선폭의 64K ROM 개발에도 성공함으로써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VLSI 시대로 진입하는 계기를 마련했을 뿐 아니라 단숨에 세계 7위권의 반도체생산기술 보유국으로 뛰어오르게 했다. 상기의 제품기술은 여전히 미국과 일본에 비해 약 2~3년의 격차가 있기는 했지만 32K, 64K ROM의 연이은 성공은 투자에 망설이고 있던 산업계에 기술개발의 자신감을 심어주면서 반도체산업의 붐을 조성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로 보고 있던 IBRD측에 1983년 KIET 반도체시설 매각계획이라는 당황스런 소식이 전해진다. 시설 매각에는 복합적인 배경이 있다. ROM 대신 DRAM이 메모리의 주류로 등장하면서 삼성전자는 이미 미국 마이크론사의 기술도입을 통해 64K DRAM 기술개발에 돌입한 반면, KIET의 반도체 장비는 벌써 다음세대의 장비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 시기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이미 민간기업에서 반도체 투자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대규모 투자를 계속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추진된 연구소 통폐합 방침에 따라 KIET는 주무부서가 상공부에서 과기부로 바뀌게 되었고 통합을 위해 대전으로 이동해야 할 형편이었던 것이다. IBRD의 설득과 반도체 생산시설의 민간매각이 이루어지면서 구미에 있던 KIET는 이미 대전에 자리 잡은 한국전기통신연구소와 통합하여 한국전자통신연구소 (ETRI: Electronics and Telecommunication Research Institute))라는 이름으로 1985년 3월 26일 새롭게 출범한다. 반도체생산시설 매각에는 대우통신과 금성반도체가 경합을 붙었는데, 여러 우여곡절 끝에 1984년 1월 금성반도체가 최종 인수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1997, pp.108~110). KIET 반도체연구단은 구미에 있는 동안 우리나라 반도체기술 기반을 확실히 다졌다 그 대표적인 성과를 기술적 측면에서 요약해보면, 무엇보다 먼저 1982년 5μm 실리콘 게이트 nMOS 공정과 1983년 4μm CMOS 공정을 확보 한 점일 것이다. 이 기술은 곧 바로 4bit SRAM, 32K, 64K ROM, 8bit micro-computer 제작에 적용되어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하였다. 다음으로 1983년 1-bit 및 8-bit microprocessor를 설계하였는데, 이는 삼성반도체통신의 4-bit microprocessor 와 함께 우리나라 microcomputer 칩 설계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와 함께 당시의 현안이었던 VTR  칩의 국산화를 위한 5종의 바이폴라 칩셋을 성공적으로 개발했다. 마지막으로 1983년 VTI 사로  7명의 연구원을 파견, 반도체 자동설계 (CAD: Computer Aided Design)이라는 첨단 설계기술을 습득하게 되면서 우리나라의 CAD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김충기, 1986, pp. 435~444). 한편 삼성은 1983년 3월 반도체의 본격적인 추진을 대외적으로 선언하고 4월 주력제품으로 DRAM을 선정한다. 일단 그룹차원의 방향설정과 품목이 결정되자, 삼성은 무섭게 돌진해 나가 그해 12월 64K DRAM 개발결과를 발표한다. 사업진출 한지 불과 10개월 남짓한 믿기 어려운 짧은 기간에 세계 3번째로 DRAM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비록 일본에 4년 정도 뒤진 기술인데다가 미국 마이크론사의 설계를 도입하여 제작한 것이지만, 64K DRAM의 성공은 반도체 경쟁을 해 볼만하다는 자신감을 각인시켜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전자업계의 경쟁사인 금성사도 삼성의 한국반도체 인수 등에 자극을 받아 반도체사업을 재검토하게 된다, 금성사는 자사의 전자제품에 사용되는 반도체 칩의 자체 개발에 주력하면서 트랜지스터 및 아날로그 칩 개발을 추진한다. 또한 1979년 9월 럭키금성 그룹은 대한반도체를 인수해 금성반도체를 창립하고 그해 말인 12월 31일 구미 반도체공장을 완성한다. 84년 KIET 반도체 생산시설을 인수한 금성반도체는 같은 해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생산하였고 85년 11월 1M ROM을 개발하여 IBM 컴퓨터 부품으로 사용하게 된다. 이처럼 80년대 초에는 웨이퍼 가공부터 조립까지 반도체 일관 생산체제를 갖춘 곳은 KEC와 삼성 그리고 금성반도체 등 3개사였는데 현대그룹은 다소 늦은 1983년 현대전자를 출범시키며 반도체에 진출한다. 후발주자로서의 어려움을 겪어가며 16K SRAM을 개발 성공한 것은 1984년 12월이다. SRAM의 선택은 나름대로의 특화전략이었지만 DRAM에 비해 복잡도가 훨씬 높은데다가 자체기술만으로는 뚜렷한 성과를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현대전자는 1985년 바이텔릭사의 기술도입을 통해 16K SRAM, 64K DRAM, 256K DRAM 및 1M DRAM 제조기술 개발에 성공한다. 이처럼 반도체기술 기반이 구축되고 산업체의 반도체 투자가 활발히 전개 되는 시점을 전후해서 반도체인력의 국내 양성은 시급한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교육기관으로 반도체 집적회로 실험실을 처음 갖춘 곳은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였다. 1975년부터 1978년 3년간의 고생 끝에 반도체소자제작이 가능한 소규모 연구시설이 구축되어 반도체집적회로의 설계, 제작 및 성능 검증까지 일련의 전 과정을 익힌 전문가를 배출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KIET는 KIST로부터 인수받아 그동안 사용해왔던 반도체 제조시설을 1981년 경북대학교 전자공학과로 기증하게 됨으로써 이 학교는 반도체 제조시설을 확보한 두 번째 교육기관이 된다 (김충기, 1986, pp. 435~444). (다음 소식지에 계속) 도약기 (1984~1997) 성장기 (1998~2013) 전환기 (2014~ )   제3절 반도체산업 미래전망

작성일: 2018-04-05 조회: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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