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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동향 - 과학기술 50년사 중에서 "반도체기술" 분야 (2)

작성자theise

작성일 2018-09-28 15:24:27

조회1,117

카테고리 2018_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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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50년사 중에서 “반도체기술” 분야 (2)

유 현 규 (반도체공학회 수석부회장)

 

제 2 절  반도체기술의 개발과정 및 주요성과

  1. 도약기 (1984~1997)

64K DRAM 성공에 자신감을 얻게 된 삼성은 1984년 3월 256K DRAM 개발에 착수하여 그해 10월 양산에 성공하였으며 이들 제품의 대규모 생산을 위한 반도체공장이 1983년 및 1985년 5월 각각 기흥에서 준공된다. 후발주자인 현대전자 역시 경기도 이천에 부지를 마련하여 1985년 반도체공장을 완공하고 그해 10월 말 256K DRAM 시험생산을, 이듬해 1986년 5월 일본 히타치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양산에 성공한다. 때마침 선두업체들이 1M DRAM 시장에 집중하면서 발생한 256K DRAM 품귀현상의 수혜를 고스란히 누린 결과, 1988년 현대전자는 반도체부문 1,624억원을 포함한 총 4,628억원의 매출액을 올리며 305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한다. 현대전자의 급성장에는 이처럼 256K DRAM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2012년, p 54). 이 시기에서 관찰되는 추세로 미국과 일본의 선진업체로부터 도입한 제조공정 기술들이 서서히 국내자체 기술들로 교체되어갔다는 사실이다. 자체 설계에 의한 독자제품의 출현은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반도체 투자가 활기를 띄면서 성과도 나오기 시작했지만 DRAM의 극심한 수급불균형과 가격변동성은 대기업에게도 4M DRAM 등 차기제품을 위한 신규투자를 망설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한국을 잠재적 경쟁자로 인식하면서 시작된 선진업체의 대규모 가격덤핑은 이제 막 시작된 DRAM 개발의 열기에 찬물을 부은 격이었다. 이 같은 후발주자의 불리한 시장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함을 간파한 정부는 범부처적인 지원정책을 강구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1985년 10월 삼성반도체통신, 금성반도체, 현대전자, 아남산업, 대우통신 및 ETRI 가 모여 공동연구를 위한 합의를 이끌어 냈다. 이듬해인 1986년에는 실무협의 및 7월의 관계부처합의 (경제기획원, 과학기술처, 체신부, 상공부)를 통한 실천방안이 수립되면서 4M DRAM 개발은 “초고집적반도체기술공동개발”로 1986년 8월 22일 대통령 재가를 받아 확정된다. 그때까지 국가 R&D 과제에 대통령이 직접 서명한 전례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개발자들은 이 사업을 대통령 프로젝트라 부르곤 했다. 0.8μm 선폭의 4M DRAM 반도체 생산기술 및 관련 기본기술개발을 목표로 사업기간은 1986년 10월부터 1989년 3월까지 30개월이며 연구비 총액은 879억, 투입인력은 670명이었다. 1986년 당시 과기처 연구개발비 총액이 517억원이었음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초대형 국가 R&D 사업이었던 것이다. ETRI를 총괄연구기관으로 반도체연구조합 회원사인 금성, 삼성, 현대 등 반도체 3사와 서울대 부설 반도체공동연구소가 참여한다. ETRI는 4M DRAM에 필요한 모든 상세기술을 도출한 뒤, 지표화된 기술개발 체계를 구축하였으며 전 과정을 철저하게 문서화 할 것을 요구했다. 이를 근거로 각 세부결과들은 계량점수로 평가되었으며 점수부여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ETRI 연구원들은 참여 3사의 반도체 제조시설을 수시로 드나들며 개발과정의 중간 과정까지 꼼꼼하게 확인 해 나갔다. 결과의 해석을 놓고 간혹 시비가 붙으며 얼굴을 붉힐 때도 있었지만 예민할 수밖에 없었던 경쟁의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동료의식으로 변해갔다. 정부의 예산이 투입 된 만큼 개발정보는 공유되어야 했고 철저한 경쟁을 통해 성과 역시 확실하게 확보해야 했기 때문에 사업을 책임 진 ETRI의 이 같은 압박 전략은 불가피 했다. 4M DRAM은 예정보다

한 달 빠른 1989년 2월 시제품개발에 성공한 데 이어 3월에는 수율 20%의 양산모델을 확보하게 된다. 이 결과는 선진업체에 불과 1년도 되지 않은 거리로 따라잡은 것이었으며, 이제 추격의 발판을 확실히 다졌다는 자신감을 우리 모두에게 확실하게 심어 준 신호탄이기도 했다 (과학기술부, 2006, pp.33~34).

4M DRAM 개발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기업과 정부는 곧 바로 16M/64M DRAM 개발 사업도 추진한다. 추격을 너머 아예 선진업체들 뛰어 넘자는 것이 이 사업의 기본 골자였다. 정부 (과기처, 상공부, 체신부)에서 600억원을, 참여기업이 1,300억원을 조달하는 등 총 1,900억원의 예산으로 1단계 16M DRAM은 1989년 4월부터 1991년 3월까지 2년 내에 개발하여 동등수준으로 따라잡고 이어서 2단계인 1989년 4월부터 1993년 3월까지 64M DRAM을 개발해서 추월하자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16/64M DRAM 개발의 범위도 확대되었다. 4M DRAM과 동일하게 ETRI를 총괄연구기관으로 반도체 3사가 참여하되 이번에는 반도체 장비관련 업체도 동참한다. 제작기술개발에도 벅찼던 4M DRAM 개발과는 달리 장비나 재료도 함께 개발함으로써 DRAM 반도체산업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도 함께 키워나가자는 취지에서였다. 추진방식은 4M DRAM의 경우와 유사한 “협력적 경쟁개발”이었으나, 지나친 경쟁의 부작용을 완화한다는 측면에서 다소 유연한 실행체계로 진행했다. 91년 3월 목표한 대로 16M DRAM 개발을 완료함에 따라 일본과 대등한 수준에 도달했고 1992년 8월 참여업체였던 삼성전자가 드디어 세계 최초로 64M DRAM 개발에 성공한다. 현대도 그해 9월 64M DRAM 시제품을 개발하여 그 뒤를 바짝 뒤쫓아갔다.

이후로도 1993년 11월부터 256M DRAM 공동개발과 이후 세대의 반도체기술연구개발을 위한 “차세대반도체 기반기술개발사업”이 4년간 총 1,946억원의 예산으로 진행된다. 반도체연구조합은 조합 내에 ‘차세대반도체연구개발사업단“을 설치하여 본 사업을 총괄하게 되었으며, 약 6년 동안 메모리 국책사업을 이끌고 왔던 ETRI는 이제 차세대반도체 기반연구에 전념하게 된다. 다부처 (과학기술부,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의 대규모 반도체 국책 R&D 사업의 주체가 국책연구기관에서 민간으로 전환된 것이다. 사업이 진행되던 1994년 8월 삼성은 256M DRAM 시제품 개발에 일찌감치 성공함으로써 256M DRAM 공동개발 과제는 조기 종료되었고, 이에 따라 목표상향 조정 등을 일부 보완된 형태로 과제는 1996년 10월까지 이어나간다. DRAM  국책사업이 연이어 진행되던 1992년, 삼성전자가 마침내 도시바를 제치고 DRAM 분야에서 세계 1위업체로 도약한다. 64M DRAM의 세계 최초 개발도 놀라운 성과였지만,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일본 DRAM 업체들을 모두 물리치고 세계 1위 기업이 된 것은 삼성전자는 물론 우리 모두의 쾌거였다. 미일반도체의 치열했던 분쟁의 조정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도 반도체업계를 지원하는 민간기구가 필요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86년 5월 24일 “한국반도체연구조합”이 출범한다. 한편 반도체시설에 대한 대규모 시설투자와 병행해서 1988년 6월 22일 국내 반도체장비산업 육성을 위해 장비제조업체 및 판매 대리점이 주축이 되어 “한국반도체장비협회”가 설립된다. 그 후 1991년 “한국반도체산업협회”기 출범하면서 기존의 한국반도체연구조합과 한국반도체장비협회는 새로 설립된 협회로 통합된다.

DRAM 반도체 생산을 위한 대규모 투자와 대형 국책사업이 진행되던 1987년 2월에 주문형반도체 (ASIC: Application Specific IC) 설계전문회사인 한국실리콘이 설립된다. 같은 해 6월에는 LSI 로직 코리아를 설립되었고 뒤를 이어 인텔과 모토로라 등 미국 및 일본의 설계전문업체들이 합작회사 형태로 진출하기 시작한다. 이듬해인 1990년에는 “서두로직”이 설립된다. 업계에서는 이 회사가 한국형 팹리스 (Fabless, 설계전문회사)의 효시로 보고 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2012년, p 145). 반도체조립회사 Comy가 설립된 지 20여년 만에야 ASIC 전문회사가 설립되기 시작 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ASIC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아남반도체설계, 금성반도체, 삼성반도체통신도 ASIC 기술개발에 착수한다. ETRI는 1985년 9월부터 한국통신으로부터 333억원의 출연금을 받아 통신시스템용 주문형반도체 기술개발에 착수하였고 7년간의 사업수행을 통해, TDX-1, TDX-10, ISDN, 광 CATV 시스템용 ASIC들을 개발하여 산업체로 이식시켰다. 본 사업 내용에는 구미의 반도체시설을 매각하면서 확보한 연구용 반도체 신규시설로 0.8μm CMOS 표준공정 (4M DRAM 급)을 개발하는 것도 포함되었다. 자체기술로 개발한 CMOS 표준공정은 1993년 ETRI 부설기관으로 설립한 ‘반도체칩디자인센터“ 통해 기업들이 요청하는 ASIC들을 설계 및 제작 지원을 하는 등, 우리나라 ASIC 서비스 전반에 대한 기반확충을 시작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1997, pp.375~376). 현대전자는 5억원 상당의 기자재를 제공했으며 상공부는 센터의 운영자금을 지원했다.

한편, 1988년 10월에는 서울대학교 부설 반도체공동연구소가 반도체 인재 양성과 첨단기술연구를 목적으로 개소 된다. 지금은 KAIST에 건립된 나노종합기술원 등 보다 최신 시설의 반도체 제작지원기관이 등장했지만, 80년대 후반에 이 같은 전문시설이 설립된 것은 세계적으로도 흔하지 않은 환경이었다. 본 연구소는 85년 개소한 이래 2015년까지 반도체 공정 및 소자분야의 석사 1,060명과 박사 501명을 배출하였으며 국제논문 1,500여 편을 게재하는 등, 반도체 공정 및 소자분야의 전문 인력양성에 구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서울대반도체공동연구소, 2016).

 

  1. 성장기 (1998~2013)

DRAM에서 승기를 잡은 우리나라는 그 후 진군을 거듭하면서 마침내 1998년 DRAM 부분에서 일본을 젖히고 제1 위의 생산국이 된다. 곧 이어서 2002년에는 메모리 전체 시장에서도 1위로 등극한다. 이 같은 성장에는 삼성전자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DRAM이 기가급으로 전환되면서 삼성전자의 독주는 더욱 가속된다. 메모리 집적도의 역사를 계속 갈아치우는 주역이 된 것이다. 플래시메모리의 약진도 메모리 1등에 큰 역할을 했다. 한편 IMF 여파로 인해 LG반도체와 합병한 현대전자는 2001년 사명을 하이닉스로 변경하여 의욕적으로 출발하지만 반도체가격 대폭락의 시기와 맞물리면서 워크아웃으로 내몰린다. 외국기업에 매각될 위기에 놓이자 반도체 전공교수들을 중심으로 하이닉스 살리기에 나선다. 하이닉스 직원들의 그야말로 피땀 어린 자구노력과 반도체 경기의 회복에 힘입어 2005년 7월 재기에 성공하였으며 2015년부터 지금까지 메모리 세계 2위 기업으로 우뚝 서 있다. 시장논리에 휘둘려 매각 됐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지금도 아찔하다.

메모리의 성장과 더불어 정부는 서둘러 시스템반도체 육성전략을 실행에 옮긴다. 시스템반도체는 메모리 및 특수반도체 소자를 제외한 모든 비메모리 반도체를 통칭한다. 산자부는 과기부와 정통부를 협조부처로 1995년 12월부터 2000년 5월까지 4년여에 걸쳐 “HDTV용 주문형반도체개발사업”을 진행한다. 1985년 한국통신 출연금으로 ETRI가 주문형반도체사업을 착수한 바 있으나 국책 R&D 사업으로는 처음으로 착수한 비메모리분야의 대형사업이었다. 산자부 산하 전문연구기관인 전자부품연구원 (KETI: Korea Electronics Technology Institute)을 총괄 주관기관으로 총사업비 916억원 (출연금 458억원, 민간부담금 458억원)이 투입되었다 (한국전자부품연구원, 2016). 참여기관으로는 KETI를 비롯하여 국내 종합전자 4개사와  KAIST 등 14개 대학이 참여하였다. 사업이 진행되던 97년 10월 HDTV Decoder용 Video/Display ASIC을 개발하고 이듬해 7월 일본 샤프에 칩을 수출 하는 등, HDTV용 핵심기술인 디지털신호처리 자체설계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다. 국내 TV 사업이 조립생산형태에서 핵심부품을 자체개발 하는 기술 집약형 산업을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산업자원부 2000). 시스템반도체개발을 위한 본격적인 국책사업 (시스템집적반도체기반기술개발사업, 일명 ‘시스템반도체 2010’)도 1998년 12월부터 시작된다. 1단계 기반기술강화, 2단계 선도기술개발, 3단계 응용산업 창출의 목표로 2011년 6월까지 진행되었으며 총 수행 기간 13년의 최장기 대형 R&D 사업이었다. 과기부 (1단계) 및 산업부 (1, 2단계, 3단계:지경부)를 주관부서로 민간기구인 반도체연구조합이 사업을 총괄했다. 총 334기관 195개 과제에 4,094명4,094명의 연구인력이 참여하였으며 정부출연 2,476억원, 민간출연 2,319억원 등 총 4,795억원이 투입되었다. 사업명으로 시스템반도체를 내세웠지만, 사업의 범위가 반도체 공정, 장비, 재료, 신물질까지 포괄하는 등, 사실상 비메모리반도체 전반을 아우러는 사업이었다. 사업기간 동안 멀티미디어 칩 (AP), 디스플레이구동 칩 (LDI), 카메라이미지센서 칩 (CIS) 등이 세계적 품목으로 성장하는 토대가 되었고 실리콘웍스, TLI, 실리콘마이터스, 실리콘화일, 아이앤씨 등 매출액 500억원 이상의 스타 팹리스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본 사업이 목표했던 바, 메모리 중심의 반도체산업구조에서 탈피하기 위한 시스템반도체산업의 기초적인 토양을 갖추게 된 것이다 (지식경제부, 2011). 이어진 시스템반도체상용화기술개발사업 (일명 시스템반도체 2015)은 시장규모가 큰 디지털가전, 모바일 및 자동차분야 등으로 선택해서 집중 지원함으로써 팹리스의 국제경쟁력을 키우고 이를 통한 시스템반도체 세계시장점유율을 확대해보자는 것이 전략의 핵심이었다. 지경부를 주관부처로 2011년 12월 착수한 본 사업은 2016년 9월 종료(총 58개월) 하였으며 정부 출연 1,001억원, 민간부담금 562억원 등 총 1,563억원으로 진행했다. 참여기업들의 매출액이 2015년 기준으로 1,000억원을 벌써 상회하였을 뿐 아니라 IP의 기술이전 약 140억원을 비롯해서 IP 특허 300건을 출원하였다 (반도체산업협회 2016 현황자료). 이밖에도 지경부는 2009년 Star SoC 사업과 2011년 착수한

IT 복합기기용 시스템반도체사업도 병행하였다. 한편 ETRI는 2008년까지 정보통신부 주관 사업을 수행했던 바, 이동통신 및 네트워크분야 등 정보통신 시스템반도체 (IT-SoC)를 중점적으로 개발하였다. 자체개발한 CDMA용 모뎀과 Baseband Analog 칩 기술을 반도체 3사로 기술이전 한 것을 비롯하여 1.25G, 2.5G, 10Gbps급 광소자반도체를 차례로 개발하여 통신네트워크 인프라에 성공적으로 적용시켰다. 1999년과 2001년에는 CMOS기술로 RF부분을 집적하여 통화시험에 최초로 성공함으로써 우리나라 RF/Analog 산업분야를 활성화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인체통신방식을 국제표준으로 등록하고 관련 시스템반도체기술을 개발하였다. 2004년부터 정통부는 IT 839전략을 의욕적으로 추진한다. 새로운 서비스와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관련 IT-SoC를 개발한다면, 그 반도체는 서비스의 보급과 함께 자연스럽게 선도적 지위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점이 IT839가 담았던 시스템반도체개발의 핵심 우위 전략이었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로 DMB 칩셋 개발 사례를 들 수 있다. DMB는 ETRI가 국제표준 승인을 받은 세계최초의 모바일 방송 서비스기술이며 이에 따라 개발된 DMB 칩기술 역시 최초가 된 것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2012, pp.239~240). 서비스보급에 따라 DMB 칩 기술을 전수받은 국내 팹리스들은 새롭게 열린 시장에서 일정기간 호황을 누렸다. 이 모델은 분명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10년이 지난 오늘의 지표들은 끊임없이 등장하는 대체서비스에 대응해야 하는 것과 새로운 독자 시스템을 전 세계로 보급, 확산하고 지속케 할 수 있는 우리의 역량 즉 국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2013년 현재 시스템반도체 매출액은 172억불로 전체 세계시장 2526억불의 5.8%를 차지한다. 정부의 과감한 R&D 투자가 다각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기대보다 높지 않은 게 현실이다. 반도체 최대의 격전장인 시스템반도체의 시장장벽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이는 어쩌면 기술뿐 아니라 시스템반도체를 둘러싼 생태계 경쟁력의 장벽이 아닌지 모르겠다. 팹리스로 대표되는 시스템반도체 설계분야는 정부가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집중 투자를 해 왔다. 그에 힘입어 2000년~2011년사이에 국내 팹리스로 상장된 회사는 25개사에 이른다. 이들 20여 업체는 지난 2008년 총 매출액 1조원을 돌파함으로써 시스템반도체 도약의 여건이 마련되었다는 부푼 꿈을 가져보기도 했다 (한화증권, 2011). 그러나 2011년을 정점으로 팹리스의 성장세는 정체되고 있다. 시스템반도체의 제작전문 산업인 파운드리 (Foundry)의 주요 업체로는 동부하이텍과 매그나칩 등이 있다. 특히 동부하이텍의 경우 1997년 설립한 이래 중화권 업체들의 강세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현재는 아날로그반도체 분야로 특화함으로써 2014년부터 흑자로 전환했으며 지난해 비로서 1,3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기 시작했다. 대만은 파운드리와 팹리스간의 시너지가 가장 잘 형성된 나라다. 대만의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은 이 같은 상생관계에 힘입은 바가 크다. 중국도 여기에 끼어들면서 범중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최근 중소 팹리스업체에 대한 파운드리 서비스 문호를 개방하였으며 SK하이닉스도 일부 아날로그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우리 실정에 맞는 팹리스-파운드리 상생모델을 만들어 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시스템반도체 기반확충의 일환으로 설계 전문인력 양성기관인 IDEC의 설립과 ETRI ASIC 지원센터 설립은 특기 할만하다. ETRI 지원센터는 1997년 서울에서 개소 한 이래 IT-SoC 지원센터를 거쳐 현재는 판교로 자리를 옮겨 수도권 SW-SoC R&BD를 연계한 신생기업 육성 및 지원의 전초기지로 그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2015년 현재까지 1,769억이 투입되었으며 연 평균 131개사의 CAD 툴 공동 활용지원, 연 평균 80건의 설계자산 (IP) 사용 및 지원을 하였고 창업보육 8개사를 포함해서 25개사가 상장되는 등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SW-SoC융합R&BD 센터, 2016). IDEC은 상업부의 지원하에 대학의 설계인력 양성의 취지로 KAIST 부설 연구센터로 1996년 설립되었다. 2015년 현재 국내 69개 대학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시스템반도체관련 교육기관 전부가 참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1년 이래 2015년까지 파악된 전문설계인력배출 현황을 보면 석사 9,260명, 박사 1,596명 등 총 10,856명을 배출하는 등 우리나라 시스템반도체 설계인력의 산실이었다. IDEC의 칩 설계 프로그램을 통한 논문은 국외저널 3,296편을 포함해서 약 15,000편을 상회한다. 특히 반도체기술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ISSCC 등 국제 유명학회에도 해마다 20여편 이상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일부 대학의 반도체설계분야 수준이 세계적임을 시사한다 (IDEC, 2016).

(다음 호에 계속)